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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삼도 공부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서

by 이십삼도 2023. 5. 7.

자연의 변화는 무엇이고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고전은 수레를 만들고 고치는 윤편이나, 오로지 권력밖에는 관심이 없었던 제환공에게는 찌거기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삶의 내일을 자기 것으로 갖고 싶고, 기쁨과 고마움으로 나날을 살려는 자에겐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줄 수 있는 답안집이 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서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서

 

책읽기에 관해서

1950년대에 국민학교와 중·고교를 다녔다. 전쟁 뒤의 황폐함은 어디에서나 맛보거나 읽을 수 있는 것이지만, 특히 책읽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내가 처음 책이란 걸 대한 건 아마도 국민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무렵의 여늬 아이들처럼 교과서 말고는 만화 가게나 부지런히 출입하는게 고작이었던 나는 어느날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책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더구나 나는 이미 만화에 조금씩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공상과 결말이며,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단순한 줄거리는 참으로 지리한 것이었다.

 

 

나는 오로지 혼자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곁에는 누군가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 무렵의 나는 오로지 혼자였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먹고 산다는 문제에 매달렸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교의 사정 또한 나을 바 없었다. 여드름이 덕지덕지 난 열 일곱 여덟 살 정도의 장대 같은 청년들이 열살짜리 코흘리개들과 함께 공부를 하던 게 당시의 실정이었다. 전쟁은 그토록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자유를 즐겼다. 버려짐에 길들여지고 나면, 버려짐에서 오는 슬픔이나 쓸쓸함, 외로움 따위의 감정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나는 거리의 구석구석을 혼자 돌아다녔다. 종로와 을지로를 이어 주는 청계천의 그 여러 다리를 어슬렁거렸다(복개 전의 청계천에는 지금의 한강처럼 여러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헌책방들을 만나다

그러다가 이윽고 나는 청계천 5가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헌 책방들에 눈길이 끌렸다. 전쟁 때문일까. 책 따위의 사치품은 거리로 내몰려 나왔다. 그 책들은 모두 나처럼 버려진 것이었다. 주인이 죽어서, 혹은사라져서, 혹은 내쫓기어 거기 모이게 된 책들은 마치 망명 정부의 문서처럼유혹적이면서도 고적한 분위기에 잠겨 있었다.나는 그 책들을 뒤적이면서, 거기 찍혀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장서인이나누가 누구에게 책을 드린다는 헌정사(辭)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책들의 내용은 나에게 너무 벅찬 것이었다. 한자가 너무 많거나, 몽땅 한자로만 되어 있었으며, 가장 많은 것은 일본어로 씌어진 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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