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십삼도 공부

헌책방에서 만난 책

by 이십삼도 2023. 5. 8.

그 책방들 사이에는 주로 만화를 취급하는 대본집들도 있었다. 나는 고급한 책들을 뒤적이다 싫증이 나면 대본집으로 옮겨가 만화를 보았다. 그러다 만화책 사이에서 처음으로 좋은 책을 만났다.

 

 

 

헌책방에서 만난 책
헌책방에서 만난 책

 

서가에서 만난 책

그날따라 더이상 읽을거리가 없어 나가려던 차에 엉뚱하게도 평소에는 감히 접근도 못하던 서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책꽂이에서 나는 몇 권인가를 뒤적이다 이광수의 소설책을 한번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책은 이순신 장군에 관한 것이었다. 쉽고 부드러운 문장이며, 재미있는이야기여서일까, 그야말로 온 정신이 홀딱 빠져들어 가는 걸 느꼈다. 꽤 두툼한 책이었지만, 나는 그 집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다 읽어 낼 수가 있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기된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이 싱그러웠고, 새로이 내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책의 세계에 들어가다

그날 이후 나는 책의 세계라는 길고 긴 여행길로 접어들었다. 거기에는 웃음꽃이 흐드러진 꽃밭도 있었고, 정신을 상쾌하게 만드는 물소리도 있었다. 때로는 오솔길을 헤매며 단풍빛에 얼굴이 타올랐고, 산정에 서서 무한한 우주의 창공을 바라보기도 했다. 책을 읽는데 남독과 정독이 있다면, 나는 틀림없는 남독형의 독서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대본집의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1,2백여 권의 책을 독파한 다음에는 다른 대본집으로 옮겨 갔다. 남독을 하다 보면 한 번 읽었던 책을 또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두번째 같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책이란 결코 만화처럼 한 번 읽고 버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되풀이 읽는 것인데도 지리하기는 커녕, 처음 읽었을 때는 미처 못느꼈던 감동이 새로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

그와 같은 경험이 되풀이되면서 나는 이윽고 한 권 두 권 책을 사모으는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신의 책을 갖는 기쁨, 그것은 어쩌면 정복자가 새로운 식민지를 소유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새로운 지식의 영토에 나 자신의 정신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기쁨,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미지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자긍심은 실로 내 영혼의 성숙에 가속도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책에 빠져 든다는 것은 마치 꿀단지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덤벼드는 꿀벌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 폭풍과 같은 격랑과 같은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을 구입해 읽고 나면 다시 눈에 띄는 또 한 권의 책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남독이 지적인 허갈을 어느 정도 메울 만큼 되면서 어느새 나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에 떠밀려 미로의 출구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이십삼도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고르는 방법  (0) 2023.05.08
신중하게 책 구입하기  (0) 2023.05.08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서  (0) 2023.05.07
갈대밭 글쓰기  (0) 2023.05.07
갈대에 관한 글  (0) 2023.05.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