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나는 한 권의 책을 사고자 하는 데 보다 신중해지기 시작하였다. 전에는 무턱대고 책방에 들어가 서가의 책 중에서 아무 것이나 집어들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먼저 내가 읽어야 할 책들,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책고르는 방법
책방에 들어서서 눈길이 닿는 책이 있어도 우선 서문이나 후기를 꼼꼼히 읽어 치운 다음 차례를 살피고, 본문의 몇 줄이라도 읽어 본 연후에야 책의 구입 여부를 결정짓게 된 것이다. 읽을 책을 고르는 방법의 하나로, 나는 가끔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다. 도서관의 목록함에는 내게 필요한 책들의 이름이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 목록들 속에서 내게 유익한 책들의 목록을 수첩에 옮겨 적곤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서관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도서관을 정보 자료 제공처로만 이용했던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책과 만남
그무렵 나는 내 생애에 있어 이제까지 잊을 수 없는 두 권의 책과 만났다. 그것은 아마 15,6세 때였을 것이다. 나는 어떤 책방에서 『장자』와 『한비자를 만났다. 그것은 한자로 되어 있는 책과, 일본어 번역판이었다. 한문 공부를 따로이 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장님 파밭 들어가는 격이었지만, 일본어 번역판에 의지해 한두 줄씩 읽어내는 성취감은 흔쾌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불가해한 비밀결사의 주인공처럼 남몰래 그것을 읽고 또 읽어 나갔다. 어차피 아는 글자는 가뭄에 콩나기처럼 드문드문한 실력이었는지라, 순서도 없이 앞장을 읽다가 얼마쯤 건너뛰어 다시 읽곤 하였다.
첫 번째 독서의 기억
고백하자면 그 두 권의 내용이 어느 정도 내게 이해되기란 2.3여 년 지난 다음 우리말 번역책을 대하고서였다. 그러나 내게는 비밀한 경전을 읽었던 외경감으로 가득 찼던 첫번째의 독서가 더 기억에 남으니 어쩌랴. 번역판을 대조해본 뒤 원뜻과 달리 오독했던 것을 깨닫고도 나는 한동안 뻔뻔스럽게 내 나름의 책읽기가 번역판보다 더 정확했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근 30여 년이 지난 이래, 다시 그때 일을 돌이킬 때마다 그러한 남독이 나로 하여금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고 자인하게 된다. 그때의 내가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 나가며 글자 한 자마다 정성을 쏟고, 각각의 낱말마다 세심히 들여다보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시인보다는 학자가 되어 있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내 독법을 가리켜 언젠가 '상상력 읽기' 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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