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으로는 이수광. 허균, 김시습, 삼당시인이었던 최경창, 백광훈, 이달 등을 꼽을 수 있다. 시는 원리와는 관계 없는 별종의 취향을 갖고 있다. 오직 천기(天機)를 농(弄)하여서 심원한 조화 속을 파악하여 정신이 빼어나고 음향이 밝으며 격이 높고 생각함이 깊으면 가장 좋은 시가 된다. 허균 한국고전시학사(韓國詩學史)』에서 최(崔)은 '천기를 하고 득해야 한다는 것을 우주의 조화, 자연의 조화, 자연의 신비를 터득해야 한다'는 것의로 보고 있다.
순수한 자기 예술세계에 대한 확립
이런 자각은 경전(經)의 차원을 벗어나서 순수한 자기 예술세계에 대한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뭏든 조선왕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조선왕조의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서 철학의 기틀이었던 주자학에 대한 모순이 드러나고 새로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실학이 싹튼다. 여기에서 관료적인 문인과 실학의 입장에 선 문인이 갈래를 지게 된다. 실학자들의 문학관은 공리공론을 일삼는 주자학에 반기를 든 문학관이기도 하지만 이들에게 민족문학적인 의식이 크게 그 영역을 넓혀가게 되는 것이다. 훈민정음은 곧 천하의 대문헌이다.
우리나라의 문학
어찌 다만 조선이라는 한 지구의 언어를 전사하는 자료일 뿐이겠는가. 정동유 수십 년 이래 일종의 괴이한 의론들이 유행되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문학을 덮어놓고 배격한다. 정약용 24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이상의 글들은 민족의 언어로서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의 언어로서의 우리글에 대한 긍지와 사대주의 문학에만 집착하는 일부 문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따끔한 일침이라 하겠다. 지금 우리 나라의 시와 문장은 고유의 언어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배워서 쓴 것이다. 가령 아주 흡사해진다 해도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것과 같을 뿐이다. 김만중회 영·정조 시대를 전후하여 싹튼 자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은 민족문학에 대한뿌리를 굳게 내려가고 있었다.
정약용 시정신
늙은 사람 한 가지 즐거운 것은 붓가는 대로 마음껏 써 버리는 일. 어려운 에 신경 안 쓰고 고치고 다듬느라 늙지도 않네. 흥이 나면 당장에 글로 옮긴다. 나는 본래 조선사람 즐겨 조선의 詩를 지으리. 그대들은 그대들 법 따르면 되지 이러쿵저러쿵 말 많은 자 누구인가. 까다롭고 번거로운 그대들의 格과 律을 먼 곳의 우리들이 어떻게 알 수 있 정약용「老人一快事」 나는 본래 조선인, 즐겨 조선의 시를 지으리라는이 선언 속에는 격과 율에 얽매인 한시(漢詩)의 까다로운 틀에서 벗어나겠다는뜻보다는 민족문학,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활감정과 호흡이 깃든 문학을 해야겠다는 시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정약용은 시어를 쓰면서 중국의 말을 쓰지 않고 같은 한자의 표기라도 우리 발음으로 바꾸거나 토속적인 시어를 창조하여 쓰고 있다. 그가 얼마나 뚜렷을문학관을 지녔던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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