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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삼도 공부

시창작의 외적 조건

by 이십삼도 2023. 5. 5.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선 이미지라든가 테크닉이라든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과 정보도 필요하겠지만, 외적인 조건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소리가 있다. 사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에 큰 영향을 받는다.

 

 

시창작의 외적 조건
시창작의 외적 조건

 

시작 장소

 

언젠가 내 시작에 있어서의 장소라든가 시간 따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쓴글이 있다. 신인 때의 일이지만 이 책의 성격상 그때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영등포 한구석에서 출발해 (신도림동에 살던 때다) 도심지의 어느 출판사에 나가 일을 보고 다시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이 왕복시간은 대개 3시간 정도이다. 이 시간에는 그저 차에 탄 채 하품이나 하는 게 일이지만 그래도한 시간 정도는 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무심히 창밖에 지나치는 나무며차며 사람이며 강물이며 하늘이며 등등의 잡다한 풍경에 눈을 주다보면 어떤생각이 우러나게 된다. 그러면 그때부터 눈길은 계속 밖에다 준 채 그 생각을 발전시키다 보면 마침내 차에서 내릴 즈음에는 거의 한 편의 시를 이루어낸다. 따라서 하루에 두 편 정도의 시를 매일 쓰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작 시간

또 있다. 하루 근무 중에 교정지 (교정은 출판사의 주요 업무다)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잠시 행간 사이에서 앞 문장의 꼬리를 내 나름대로 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연상에 연상을 거듭하다 보면 그것 역시 한 편의 시가 이루어진다.하루에 한 편 꼴이다.하룻동안에 내가 만나고 이루는 이들 시를 모두 합하면 한 네 편 꼴이 되는셈이다. 이쯤에서 언젠가 박모는 1년에 시 백 편을 목표로 하는 괴상한 놈이다' 하던 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세상에 어떤 넋나간 친구가 기계처럼 일정량을 정해 놓고 시를 쓴다는 말인가.

 

시 발표 분량

그런 발상 자체가 순진한 것일 게다. 나는 사실 1년에 백편 정도 발표해 본 적이 한 두 해 정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1년에 서너 편밖에 발표하지 못한 해도 많다. 올해만 해도 이미 10월달인데, 나는 작년 10월부터 써오던 시까지 합쳐서 겨우 20여편, 그나마도 발표는서너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쯤에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자.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하루에 네 편 정도의 시를 만나고 이루어 낸다지만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 작품화한 것은 한 번도 없다. 기억력이 나쁘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처음부터 종이에 적어 작품화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것이 완성되면 1초라도 빨리 그것들을 잊어버린다. 그것들은 다만 내 시가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땅,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흙이므로,나는 늘 땅을 다지고 흙을 고르는 마음을 지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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